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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성
<하남성>, 당나라 대시인 백거이의 묘(白居易墓)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05-27 오전 10:45:07
  • 조회 : 9126
  • <하남성>, 당나라 대시인 백거이의 묘(白居易墓)
  • 주소 : 河南省洛阳市洛龙区南12公里的龙门东山琵琶峰白园
  • 지역 :
소개

백거이의 묘(白居易墓)

향산, 용문교 왼쪽 산기슭에 자리잡은 백거이의 묘인 백원은 백거이가 생전하던 839년에 중풍으로 고생하면서도 향산에 왕래하며 ‘취음선생전(醉吟先生傳)’ 등의 작품 활동을 하던 곳이다. 846년 8월 7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자 이곳에 무덤을 조성하였다. 이곳에 들어서면 나즈막한 언덕의 비탈길이 나오고, 여기저기에는 정자와 기념관도 서있다. 경내에서 가장 높은 언덕을 돌아가면 평평한 곳에 백거이의 무덤이 있는데, 직경이 10m안팎, 높이 2.5m쯤 되고 밑둥에는 화강암으로 호석을 둘렀다. 무덤 앞에는 일주석문과 거대한 백낙천의 사적비, 일본인 불교신자들이 세운 백거이의 시비들이 서 있다.
 

백거이는 두보, 이백과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3대 시인의 한사람이다. 호는 취음선생(醉吟先生) ·향산거사(香山居士)이며 이백(李白)이 죽은 지 10년, 두보(杜甫)가 죽은 지 2년 후에 낙양(洛陽) 부근의 신정(新鄭)에서 태어났다. 5살 때부터 시짓는 법을 배웠다. 27세 때 진사시험에 급제하여 한림학사, 좌습유(左拾遺) 등을 지냈으나 그리 순탄한 관직생활은 아니었고, 나이 50이 넘어서야 항주와 소주의 자사(刺使)를 역임하게 되었다.

이후 이곳 향산에 은거하면서 시와 술로 만년을 보냈다. 그의 시는 민중시인, 사회시인, 풍유시인 등으로 불릴 만큼 하층빈민의 입장에서 세상에 대한 불공평을 개탄하는 내용이 많다. 그의 풍유시 170여수와 신악부(新樂府) 50수는 평민들의 비참한 생활과 사회적인 모순과 갈등을 인본주의적인 견지에서 파헤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당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테마로 한 '장한가'를 비롯하여 '비파행(琵琶行)', '진중음(秦中吟)' 등을 들 수 있다.

 

위치 및 교통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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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 : 河南省洛阳市洛龙区南12公里的龙门东山琵琶峰白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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